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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Brian Epstein

5thBeatles 5thBeatles 2003.01.02 19:30

인터넷 여기저기에 나의 닉을 5th Beatles로 쓰곤 한다. 혹자는 '비틀즈 좋아하냐'며 '근데 왜 2nd도 아닌 5th Beatles냐'며 묻곤 한다.


5th Beatles라는 20세기 최고의 밴드인 Beatles의 매니저를 지냈던 Brian Epstein의 별명이다. Beatles의 프로듀서를 지냈던 George Martin은 Brian Epstein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Brian Epstein이 없었더라면 비틀즈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틀즈를 포장하여 팬들에게 선보인 것은 바로 Brian이었습니다." 


내가 5th Beatles라는 닉을 쓰는 이유는 Beatles를 좋아하기는 이유도 있지만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4명의 천재를 하나로 묶어 내고 대단한 인물로 키워낸 그의 능력을 높이 사고 흠모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두 글은 다른 곳에서 퍼온 겁니다.


http://www.gachon.ac.kr/%7Eburningice/history/history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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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와 Brian의 만남이 이상적인 만남이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워낙 스타일이 틀렸기 때문이다. Brian은 비틀즈와는 달리 부유했고, 유태인이었고, 매우 매너가 있었다. 그는 꽤 큰 규모의 음반가게를 운영하는 사업가(?)였고, 동성연애자였고, 록음악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편이었다. 비틀즈의 단골 무대였던 Cavern Club은 그의 음반가게에서 불과 200야드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는 한번도 비틀즈의 연주를 듣기는 커녕, Cavern Club을 방문한적 조차 없었다. 비틀즈의 명성이 높아지자 그는 Cavern club에 한 번 들러보기로 했다. Epstein은 곧 시끄러운 소음과 냄새에 질려버렸다. 하지만 비틀즈를 만나자마자 7개월 후 Martin이 그랬던 것처럼 비틀즈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Epstein은 당시를 다음처럼 회상했다 

"클럽에 들어섰을 때 뭔가 있다고 느껴졌어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은 복장도 단정하지 않고 지저분했어요. 그들은 공연중에도 담배를 입에 물고 아무렇게나 노래를 불러댔으며, 서로 때려가며 장난을 일삼았어요. 관중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거나 자기들끼지 킥킥거리며 웃어대기도 했죠.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팬들이 이들의 공연에 몹시 흥분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저도 곧 그들의 마력에 매료되었죠."

이후 Cavern Club을 자주 찾게 된 Brian의 마음에는 큰 꿈에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비틀즈는 이전 매니저와 결별을 하고 Brian을 새로운 매니저로 받아들인 후부터 진정한 프로페셔널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Epstein과 계약을 맺은 1962년 1월 24일 이후부터는 모든 활동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Brian은 우선 쓸데없는 공연에는 비틀즈를 출연시키지 않았고, 출연 계약금도 이전보다 많이 받아냈다. Brian은 또한 이들의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비틀즈가 즐겨입던 가죽자켓 대신 양복과 넥타이를 입혔다. 함부르크와 Cavern Club에서 이들이 보여줬던 와일드한 스테이지 매너도 자제할 것을 지시했고, 담배를 물고 연주하거나 무대에서 장난치는 것도 금물이었다. 앞으로 비틀즈는 가급적 짧은 시간에 많은 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대만을 골라 출연하게 된다.

브라이언은 그들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쏟았다. 이런 일화도 있다. 

브라이언 왈: "너희들 맘에 안드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내가 고쳐주지."

조지 왈: " 오 그래요? 난 당신 넥타이가 맘에 안들어!!(Oh yeah? I don't like your tie!)"

아주 비틀즈다운(?) 일화죠...낄낄낄^^


아무튼 이들은 몇차례 오디션에서 딱지맞은 다음에 가까스로 EMI와 계약을 체결한다.EMI사와 음반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비틀즈는 이제 리버풀의 작은 물에서 영국이라는 시장을 겨냥하게 된다.

당시 세번째 함부르크 공연을 하고 있던 비틀즈는 이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자신들에게 와 있는 전보를 읽었다. Brian이 보내온 전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축하하네 젊은이들. EMI사에서 녹음세션을 요청해왔네. 신곡 연습을 시작하도록. (Congratulations boys. EMI request recording session. Please rehearse new material.)" 

드디어 비틀즈는 1962년 5월 31일 리버풀로 돌아온 후, 다음주에 Abbey Road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6월 6일, 프로듀서 George Martin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후 Martin은 Epstein에게 드러머를 교체해줄 것을 주문한다. Martin의 회고록에 의하면, 자신도 당시에는 몰랐지만, John, Paul과 George도 이미 Pete 대신 Ringo를 새로운 드러머로 점찍어 놓고 있었다고 한다.(당시 비틀즈는 링고를 함부르크에서 알게되었다.) Pete Best는 어디까지나 함부르크행에 동행하기 어쩔수 없이 위해 구한, '계약직 드러머'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Ringo는 Kaiserkeller(함부르크에 있는 클럽)에서 처음 만났을때부터 John, Paul, George와는 '천생연분'이었다. 그리고 Martin 과Brian의 지도하에 비틀즈는 라이브 공연과 음반 제작을 병행하면서 1962-63 2년에 걸쳐 리버풀을 벗어나 영국국내에서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중략)

존의 예수발언 이후 필리핀 마닐라에서 공연하면서 테러위협에 시달리던 비틀즈는 앞으로 공연을 하지 않을 것임을 일방적으로 Brian에게 통보했고, 발작을 일으킨 Brian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앰뷸런스에 실려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비틀즈가 1966년 8월 29일, 미국 San Francisco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고 난 후 Brian은 "이제 난 어떻게 하지?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거지? 모든게 끝이야..." 라고 말하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Brian은 이때부터 마약을 복용하며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Brian과 비틀즈가 맺은 계약의 만료일은 1967년 10월 9일이었으며, Brian은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비틀즈가 자신들의 계획대로 명반 Sgt. Pepper를 제작하고 영화 Magical Mystery Tour를 만드느라 정신없던 1967년, Brian의 상태는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8월 27일, Brian은 자신의 방에서 써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부검결과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판명이 됐다. 자살이었는지 실수였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자살로 보는 것이 옳을듯 싶다. 당시 인도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있던 비틀즈가 Brian의 사망소식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당시 카메라에 잡힌 John과 George의 모습은 덤덤했다. 당시 John은 'Brian의 죽음은 허상에 불과하며,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Brian과 즐거웠던 한때를 회상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년 후 John은 이렇게 얼버무린 자신의 말을 후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Brian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모든게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희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음악 뿐이었습니다. Brian의 소식을 들었을 대 겁부터 덜컥 났습니다. 이제 비틀즈는 끝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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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oy0330.hihome.com에서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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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Epstein은 1934년 생으로 Riverpool에서 부유한 유태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가구점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가 태어날 무렵 사업을 확장하여 음반과 악기를 판매하는 넴즈NEMS(North End Music Store)라는 대형상점을 경영하였다. 

어머니가 애지중지 키운탓인지 그는 무척 허약하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외면의 소심함이 내면의 음습함을 자극하였는지 그는 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열살 때 학교에서 퇴학당했고,일곱번이나 전학을 다닌 끝에 15살 때 학교문을 나와야 했다. 그가 학교측의 냉정한 조치를 받은 데에는 30년대 기승을 부리던 유태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편견도 작용하였다. 더군다나 성인이 되면서 그는 자신이 동성연애자임을 발견하였다. 

열여덟살이 되던해 그는 군대에 징집되어 부모의 함으로 런던에서 근무했지만, 그나마 얼마 후 '정신적, 감정적 부적격자'라는 판정을 받고 강제 전역당해야 했다. 그가 군대에서 쫓겨난 진짜 이유는 동성연애자였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제대후 부모는 그에게 가구점을 차려주었고 그는 성공적으로 경영하였다. 스물다섯이 되던 1959년에 리버풀의 중심지 샤로트가에서 넴즈의 분점을 그의 형과 함께 경영하게 되었다. 브라이언은 이때부터 사업에 남다른 수완을 발휘하여 2년뒤,즉 그가 비틀즈와 만났을 때 넴즈는 영국 북부 최대의 음반상이 되었다.

1961년 10월 28일 오후 세시경 레이몬드 존스라는 청년이 넴즈에 들러 Beatles의 레코드를 찾았다. Brian은 Beatles의 이름도,라는 beatles의 레코드도 처음들었다. 11월 8일 흥미를가지고 넴즈로부터 200미터 떨어지지 않은 Cavern Club을 찾았다. 몇번의 만남 끝에 이듬해1월24일에 그들의 매니저가 되기로 정식계약을 맺었다.

'5th beatles'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그는 1967년 8월 27일 Beatles가 뱅거에 머무는 사이, 런던 서남부 1벨그라비아 채플 스트리트 24번지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약물과용으로 사망한채 발견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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