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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round/대~한민국

[나의 문화유산견학기 #01] 예산 추사고택

아마 추사 김정희, 정확히 김정희라는 이름을 인식한 것은 고등학교 때 영어 담당 은사님의 성함이랑 똑같았다는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름 인디아나 존스를 꿈꾸고... 그러다가 벌레도 싫고 뱀도 싫고, 가장 큰 이유로는 몸고생이 싫어서 고고학자가 아닌 역사학자를 잠시 꿈꾸다가, 인생 경로가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완전히 틀어버려져서는.... 김정희란 조선의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이자 자존감 탑인 이 어르신은... 딱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 적어도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리기 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1층의 신라관에 한 자리를 잡고 있는 북한산진흥왕순수비를 보고 참 크고 멋지다라는 생각을 하던 그 찰나에, 그 한편에, 지금으로서는 문화유산 훼손죄에 해당할, '내가 이걸 해석해냈소' 하고 자기 직인을 긁어 새겨 둔 이 괴랄한 천재의 이름이 머리에 딱 꽂힌 순가, 그 뒤로 이 천재의 흔적을 찾아서 영상도 보고 제주도까지 여행가서 찾아보고 하다 보니,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저씨였다. 어쩌면 나랑 가장 비슷한... 그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그래서, 천안 쪽으로 내려 갈 일이 있어서 차를 조금만 돌려서는 예산에 있다는 추사 고택, 추사의 선조 때부터 대대로 살았다는 그 집을 찾아가 보았다. 지금도 작렬하는 태양이지만, 정말 이 날도 더웠지만 그래도 11시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 넓디 넓은 아스팔트 주차장에 내려서는 추사 고택을 돌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추사 고택 맞은 편에 위치한 추사체험관이었다. 명필이자 서화도도 잘 그렸던 그이고, 또 금석학에 있어서 독보적이었던 그였기에, 그의 재능들이 담긴 서예나, 그림, 탁본 등을 따라 해 보는 체험관이 별도로 있었다. 아이들이 즐기면 좋을 거 같고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일정도 있고, 현금도 없고 해서 일단 스킵. 체험관 앞의 추사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재현한 실물 크기의 조형물도 나름 재밌었다. 

체험관을 나와서는 동쪽으로 향해서 걸어가니 고택 옆으로 난 야산과 그 앞 비탈 사이에 길을 잘 정돈해 놨었고, 그 길로 가다 보면 언덕 쪽으로, 김정희의 증조부가 되는 월성위 김한신과 그의 부인이자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와 정빈 이씨의 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가 보인다. 해설사를 따라 가시는 분들은 길을 벗어나서 풀밭을 걸어 올라가 묘역까지 가던데... 나름 그래도 왕릉은 아니지만, 남의 묘역이고 왕가의 묘역인데 그 뒤쪽으로 넘어가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관람객을 보니 좀 눈쌀이 찌푸러졌지만.... 그런 못 볼 것들이 지나고 나서 그냥 묘역과 뒤의 야산의 나무들, 그리고 홀로 서 있는 백송을 보자니, 날은 더웠지만, 여기도 명당이구나 싶었다.

추사 고택에서 동쪽으로 가는 도로와 이를 지나면 나오는 잔디뜰 사이의 꽃으로 꾸며놓은 인도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묘
화순옹주 묘역 옆의 백송
인도를 지나서 홍문 앞에서 바라본 월성위/화순옹주 묘역

조선 17대 임금인 효종 때, 효종의 형수인 소현세자빈 강씨의 신원-억울함을 풀어주다, 요즘 말로 하면 사면복권-을 요청하다 장살-곤장 맞아 죽음-을 당한 김홍욱의 고손자인 김한신은 아버지가 영조 시절에 영의정을 지냈는데, 화순옹주의 남편, 즉 영조의 사위(부마)가 되어서는 월성위가 된다. 근데, 이 결혼에도 아픈 사연이 있는데, 김한신이 겨우 37세에 세상을 떠나게 되자, 부인인 화순옹주가 곡기를 끊고, 즉 단식을 하여 남편이 죽은 지 13일만에 화순옹주도 세상을 뜨게 된다. 보통 이 당시에는 남편을 따라 이렇게 죽게되면 열녀로 봉하고 조정에서 열녀문을 지어 널리 알리도록 하는데, (개인적으로 비호이고 그래서 쪼잔하다고 폄하하는 ^^) 아버지인 영조는 절개를 지켰을지는 모르나 아버지가 단식을 끊으라고 했던 말을 따르지 않은 불효라 하여 열녀로 지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화순옹주의 동복 형제인 효장세자 아래로 입양되어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를 잇게 되는.... 결국 조카가 되는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에 의해서 열녀로 지정되어, 아래 사진에 나오는 홍문이 지어져서 지금까지 내려져 오게 된다. 이 21대 영조/22대 정조로 이어지는 이 사이에 복잡한 가정사는 워낙 얘기가 많이 되지만, 화순옹주와 효장세자의 어머니인 정빈 이씨는 죽어서도 영조 때문에 칠궁에서 시어머니되는 숙빈 최씨와 같은 사당에 모셔져 있으니 얼마나 불편할까(^^)...라며 암튼 모든 게 맘에 안 드는 영조다. (^^)

화순홍주홍문을 구경하고 나서는 월성위 김한신의 아버지이자 추사의 고조부가 되는 김홍경의 묘역과 그 옆에 백송을 보러 가려 했으나, 날도 덥고 나름 걸어가기 너무 먼 거리라 그 옆 백송공원까지만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물론, 나중에 차를 타고 가긴 했지만서도...

백송공원
백송과 그 너머의 김홍경의 묘

다시 월성위의 묘 앞을 지나서 갔던 길을 돌아와 추사 고택 관람을 시작했다. 여러 한옥 마을이나 이런 곳에 호화롭게 지어놓은 새삥 한옥에 비하면 오래되고 규모가 작긴 했지만, 추사의 글씨들이 기둥마다 달려 있는 것이 눈을 즐겁게 했고, 또 옛스러이 아늑한 고택도 보기 좋았다. 정말 그랬다. 

추사 고택의 출입문. 보수 공사 중이었던 당시

추사 고택에서 고택의 정취를 느낀 다음 옆문으로 나와 보니 예전부터 사용했던 우물을 지나쳐서는 추사 김정희의 묘를 지나가게 되었다. 접근을 막지 않아서, 근처까지 올라가서 사진도 찍고 또 그 앞의 홀로 서 있는 나무도 하나 찍으면서 풍경을 감상했다. 비록 날은 더웠지만...

추사의 묘역

추사의 묘역을 지나서는 이 추사 고택 영역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추사 기념관을 들렀다. 추사의 일생과 작품을 전시해 둔 곳이었는데, 생각보다는 볼만한 것들이 있어서, 더위와 햇볕을 피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 들리면 꼭 사가야 하는 기념품들이... 내가 원하는 건 없어서 좀 아쉬웠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내 맘 속에 조선의 아이돌인 추사 김정희가 가장 자존감이 높아, 거침없이 없었던 시절에 살았던 고택, 그의 가문이 계속 살아왔던 그 고택 견학을 마쳤다. 나름 왕실과 인척 간이고, 명문가의 자재였고, 실력 또한 남들보다 뛰어났던 그가 여기서 어떻게 지냈을까 생각하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뜻깊은 견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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