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행궁5 [화성행궁 05]서리청(書吏廳)과 남군영(南軍營) 유여택을 보고는 신풍루 방향(동쪽)으로 계속 좁은 문들을 지나서 있는 각각 비장들과 하급 관리들이 근무하는 비장청(裨將廳)과 서리청(書吏廳)으로 가 봤습니다. 여기엔 별도의 전시품이 있진 않아서, 그냥 건물만 보고 다시 동쪽으로 이동했는데요. 바깥으로 나가기 전 가장 남쪽에 있는 건물 중 가장 동쪽에 해당하는 자리에는 남군영(南軍營)이 있습니다. 남군영 중앙에는 종종 조선 시대의 무장들의 복식과 무기들을 착용한 모습을 전시하기도 합니다. 남군영에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오면 신풍루와 좌익문 사이의 공간이 되는데, 여기에서 북쪽으로는 집사청과 북군영으로 이어지지만 이상하게 이 곳은 자주 지나치게 되더군요. 이 곳은 나중에 다시 수원 화성에 들릴 때 사진과 다시 함께 만나 뵙겠습니다. 2023. 2. 5. [화성행궁 04]복내당(福內堂)과 유여택(維與宅) 지난 글에서 얘기한 봉수당 뒤편의 길쭉한 직사각형의 모양을 한 마당을 걸어 지나서는 남쪽끝이자 행랑채 테두리의 마지막으로 가서는 장락당(長樂堂)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는 봉수당을 바라봤을 때 왼편, 동서남북으로 보면 남쪽으로 이어진 침실에 해당되는 건물로 혜경궁 홍씨와의 화성행차 때는 혜경궁 홍씨가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근데 여기는 사진을 깜빡했네요. 여기 사진은 안 찍고 여기서 복내당으로 나가는 2개의 문만 찍었는데, 여기 보면 이름이 다복문(多福門)과 장복문(長福門)으로 어머님의 장수, 복을 바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정조 임금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하네요. 복내당(福內堂)은 복은 안으로부터 난다는 뜻으로, 평소에는 수원 관헌에 있는 유수의 가족들이 머물지만, 행차가 오면 상궁들이나 내시들이 기거하며.. 2023. 2. 5. [화성행궁 03]득중정(得中亭)과 행궁 뒤편 낙남헌 마당과 북쪽(운한각) 영역이 공사로 가려져서 입장이 안 되다 보니 낙남헌을 돌아서는 행궁과 팔달산자락 사이의 뒤편으로 이동을 했는데, 위의 왼쪽 그림에서 낙남헌 위쪽으로 약간 삐져 나온 부분이 바로 득중정(得中亭)입니다. 정조께서 직접 활을 쏘던 어사대가 있던 정자였다고 하는데 원래는 낙남헌 자리였다고 하나 정조 때 증축될 때 위치를 현재의 이 자리로 옮기면서 이렇게 이어진 건물이 되었다고 하네요 득중정에서 팔달산을 향해 보면 내포사와 미로한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지만, 이 날은 조금 더워지기도 하고, 그리고 이후 일정 때문에 시간이 좀 빠듯하기도 해서 올라가진 않았습니다. 다음 번에 내포사와 미로한정을 가게 되면 그 곳은 별도로 글을 또 올릴께요. 암튼 득중정의 뒤로 돌아 들어가면 아래 사진처.. 2023. 2. 2. [화성행궁 02]봉수당(奉壽堂)과 노래당(老來堂) 봉수당(奉壽堂)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상위에 해당하는 건물로, 처음은 보통 수령들이 있는 관아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동헌과 동일한 7칸 건물로 이름은 장남헌(壯南軒)이라고 지어졌습니다. 이후에 정조가 어머님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이하여 화성행궁행차를 했을 때 회갑연인 진찬연이 벌어진 곳도 바로 이 봉수당 앞 마당이었습니다. 이 회갑연을 하게 되면서 어머님의 장수를 기원하면서 이름이 봉수당(奉壽堂)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하네요. 저도 화성행궁에서 '달달한 행궁로맨스'나 '진찬연' 행사를 할 때도 종종 들렀던 곳이라 왠지 모를 익숙함이 있는 곳입니다. 임금님이 계신 곳이다 보니 근정전이나 인정전처럼 임금님이 지나가는 길인 어로와 월대가 별도로 만들어져 있기도 하구요. 봉수당 건물까지 걸어간 뒤 팔달산을 보고.. 2023. 2. 1. [화성행궁 01]화성행궁 삼문 22년 봄, 화성행궁이 또 야간개장을 했는데, 오히려 저는 주말 아침에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의 화성행궁 내부를 찍고 싶어서,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화성행궁으로 걸어 나갔네요. 행궁광장에서 바라보니 청의와 홍의를 입은 대형 수문장 피규어가 있었고, 홍살문을 지나서 화성행궁의 정문 역할을 하는 신풍루(新豊樓)를 지나서 행궁 안으로 입장을 했습니다. 신풍루는 누각이면서 또 행궁의 삼문(三門) 중 외삼문(外三門)에 해당됩니다. 원래는 '진남루'라고 이름 지어졌지만, 중국을 통일했던 한고조의 고향이 '풍패'라는 곳인데, 이 때문에 제왕의 고향을 '풍패'라고 부르는 표현이 쓰였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관(5대조의 고향이기도 한)이 전주이다 보니 전주에 '풍패지관'이라고 하는 객사.. 2023. 2. 1.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