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시대가 도래하기 전만 해도, 각 방송국에서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관광 목적으로 방문해서 여기저기 다니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참 많았었다. 외국인끼리 좌충우돌하는 것도 있고 연예인들이 호스트가 되는 프로그램도 있고. 어찌 됐든 그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종종 가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생각해보면 주인장도 해외에 가면 역사 관령 박물관을 자주 찾는 편인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역사 관련 가장 크고 유명한 ‘국립중앙박물관’은 근처조차 지나간 일이 없었던 건 나름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던 참에,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집에서 딩가딩가 거리며 바보상자를 보던 중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근 3-5년간 새로이 지정된 국보와 보물이 전시된다는 걸 알려주는 걸 보고 ‘옳다구나’ 하고는 바로 예매 사이트를 통해 예매를 진행했다.
그렇게 예매한 관람일이 바로 지난 일요일(7/25).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입장 시간도 별도로 두고 시간별 입장 인원수도 제한을 두었고, 그래서 예약한 시간인 12시에 맞춰서 집을 나섰고 중간에 이른 점심을 먹고, 드디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 주차장은 지하 주차장이었고, 기획전시실이 있는 건물에서 입장권을 찾고는, 거리두기에 맞춰 줄을 서고는 체온체크와 손소독을 하고 방명록 작성하고는 드디어 입장!!!!
입장하면 먼저 국보 322호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국보 306호인 일연의 삼국유사가 잠깐 나옵니다만, 그 다음이 바로 끝판왕이라.... (그리고 이건 이번 기간 상시 전시라.... 이 부분은 따로 설명드릴께요. 글이 길더라도 꼭 마지막까지 읽어주ㅛ셍)
첫 전시실에는 대한민국 역사 기록의 끝판왕인 ‘조선왕조실록’이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버전(정족산 사고 본...으로 기억) 말고 오대산사고본(국보 151-3호) 중심으로 추가로 발견된 것들이나, 같은 주제/소재이나 집권세력에 의해 재편집되었던 내용과 관련된 것. 그리고 절대 지우개를 쓰지 않고 종이를 덧대어서 기술한 것 등등 조선왕조실록과 관련되어 관심있을만한 내용을 실록 서책들을 펼쳐 전시하고 있더군요. 글씨들도 참 정갈하고 이쁘더군요.
그리고 실제로 기록되어 있는 것 중 일부는 분야별로 해서 LED 스크린을 통해 해석한 내용을 볼 수 있게 해서 좋았습니다. 그 중에서 마나느님이 맘에 들어한 내용을 찍은 걸 올려보냅니다.
그리고 전시실 한 쪽에는 옥새(!)들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용도별로 사용되는 옥새가 다르다는 것도 신기했고 무엇보다도 주방 관련해서 옥새를 사용해서 물건을 사들이고 뭐 하고 그랬다는게 ㅎㅎㅎㅎ
이거 말고도 요즘으로 치면 공공문서 작성양식/Template라고 할 수 있는 왕/조정에 올리는 표와 제의 양식을 정의한 문서, 숙종이 태조의 전례를 따라 60세가 되어 노신들이 모여 있는 기로소에 들어가게 된 걸 축하하고자 만든 국보 325호인 기사계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어서도 계속 기록물 관련해서 새로이 지정된 전시물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논공 포상 서류와 임지 발령 시 받은 밀지 등도 전시되어 있었네요.
그 다음 전시 테마는 공예품이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한 금속공예품과 백제의 공예품, 그리고 고려시대의 청자들 중에서 새로이 발견되어 지정된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뭘 만드는 재주가 없어서인지 아님 앞서의 기록/서적 관련 전시물과 이제 얘기할 그림 관련 전시물에 더 매료되어서인지 공예품 관련해서 사진이나 뭘 적어둔 건 없네요 ㅠㅠ ㅠㅠ
어쨌든 다음 전시실에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와 심사정의 ‘촉잔도권’의 이른바 두루마리에 엄청난 가로 길이를 자랑하며 그려둔 그림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촉잔도권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촉나라, 즉 유비의 그 촉나라로 장안에서 들어가는 길, 한고조 유방이 서초패왕 항우에게 밀려 한중 땅으로 밀려날 때 지나갔다던 그 잔도를 얘기를 듣고 그린 작품인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 맞은 편에 있고, 또 이 전시실의 벽에 일부가 옮겨 그려져 있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가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멋있고 또 좋았드랬습니다. 강과 산이 "무진", 말그대로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이었는데, 산봉우리와 계곡, 절벽들, 논밭, 강가 등이 이어지지 않고 그려져 있으면서, 또 그 안에 무려 360여명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의 크기는 정말 두루마리가 영원할 거 같이 죽 이어지는데, 그 위에 강산도 지루하지 않게 변화를 줘 가면서 그려져 있고, 그 안의 나무나 사람, 화초 등을 그려낸 세세함이란.... 정말 Two Thumbs Up. 추사 김정희가 자자손손 남겨야할 보배라고 하며 인을 찍어 남겼는지 그 맘을 알겠더군요.
그 다음 계속 이어지는 조선시대 그림들은 정선의 풍악산내총람도(풍악산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다)와 한강변을 따라 가 가는 경교명승첩, 금강산에서 동해바다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우리네 풍경이 그려진 해악전신첩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못 가 본 그 산하 중 하나인 평양을 소재로 하여 그려진 산수화로 된 병풍이 전시되어 있었네요. 거기서 능라도, 양각도, 을밀대.... 음 냉면 집들? 대동문 등등 해서 평양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었네요.
그리고는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들이 등장합니다. 아래 그림을 혹시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병아리를 물고 도망치는 묘선생과 묘선생에게 곰방대를 휘두르고 있는 아저씨. "야묘도추"라고 하는 이 익숙한 그림을 저는 당연히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김득신의 그림이더군요. 이 뭔지 모를 배신감과, 무안함과 당혹감이 ㅎㅎㅎㅎㅎㅎ
같은 전시실에는 김득신은 물론 김홍도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고사인물도" 중 세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리고, 이 날 "훈민정음"과 "강산무진도"와 함께 저를 가장 매료시켰던 작품이었던,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말을 타고 가는 선비와 말을 이끌고 있는 동자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비스듬이 위로 바라 본 곳에 있는 버드나무 속 꾀꼬리. 가는 길이 바쁘겠건만, 들려오는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마치 덕통사고에 빠진 양 넋이 빠져 쳐다 보고 있는 모습에 나도 선비와 동자의 눈길을 따라 자연스레 앵무새를 바라보게 되는......
그렇게 꾀꼬리 소리에 빠져 있을 때, 전시는 그새 서예와 수묵화의 세계로 바뀝니다. 자신만의 새로운 필체를 만들어 낸 추사 김정희와, 기존 서법 예찬론자(?)인 이광사 간의 서법 논쟁을 펼친 글들을 직접 볼 수도 있고, 김정희의 난을 주제로 한 수묵화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월인천강지곡 등을 포함한 불교 관련 국보와 보물들, 그리고 이 중앙박물관으로 가져 올 수 없는 건축물들을 찍은 영상들을 틀어주더군요.
거의 2시간에 걸쳐 정말 시간 가는 줄 보고 모르고 나왔는데,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전시해야 할 국보와 보물들이 많아서, 약 2달간의 전시기간 중에 두 번, 전시품을 변경한다고 한다네요. 여러 작품으로 구성된 "첩" 전체가 아니라 나눠서 전시하기도 하고, 또 그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도 다음 전시품 교체 시에 전시가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일정을 확인하고는 집에 돌아와서는 2번 더 예매를 했네요. 그리고 실제 상설전시도 보려고 예약까지 했으니 총 3번 더 예매했다고 해야 하나요. ㅎㅎㅎㅎ
그렇게 즐겁게 전시를 보고 나오니 딱 하니 앞에 자리 잡은 특별전시 관련한 기념상품을 파는 조그만 샾..... 나전칠기가 입혀진 공예품에.... 그냥 지름신이 이 몸에 임하셔서 어느샌가 물욕에 휩싸인.... 그랬는데, 본관 내에 Main Shop이 있다고 안내 해 주시는 덕분(?)에 바로 그 곳을 가서는 더 다양하고, 더 가지고 싶은 기념품들 속에서 허우적 대다가 결국은 꽤나 사들고 나왔네요.
장마도 시작되고 습하고 더워지는 여름, 전시실 속에서 우리네 조상님들의 작품들을 구경하러 가는 것도 참 좋은 피서법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많이들 꼭 한 번 이상은 가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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