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얘기한 봉수당 뒤편의 길쭉한 직사각형의 모양을 한 마당을 걸어 지나서는 남쪽끝이자 행랑채 테두리의 마지막으로 가서는 장락당(長樂堂)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는 봉수당을 바라봤을 때 왼편, 동서남북으로 보면 남쪽으로 이어진 침실에 해당되는 건물로 혜경궁 홍씨와의 화성행차 때는 혜경궁 홍씨가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근데 여기는 사진을 깜빡했네요. 여기 사진은 안 찍고 여기서 복내당으로 나가는 2개의 문만 찍었는데, 여기 보면 이름이 다복문(多福門)과 장복문(長福門)으로 어머님의 장수, 복을 바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정조 임금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하네요.
복내당(福內堂)은 복은 안으로부터 난다는 뜻으로, 평소에는 수원 관헌에 있는 유수의 가족들이 머물지만, 행차가 오면 상궁들이나 내시들이 기거하며 소주방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할 당시에 여기에서 소주방 관련 내용이 촬영되었다 보니, 실제로 복내당과 그 주위 여러 협문과 그 협문으로 이어진 각 채에는 대장금 관련 전시품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복내당을 좁은 협문들을 돌아 다시 신풍루 쪽(동쪽)으로 나오면 유여택(維與宅)으로 나오게 됩니다.(아래 사진) 유여택 앞 마당은 꽤 넓어서 여러 행사들이 펼쳐지곤 하는데, 코로나 기간에는 뮤예24기의 장용영 시범이 펼쳐졌습니다. 유여택을 바라보면 오른쪽 끝에 공신루(拱宸樓)라는 누각이 하나 튀어 나와 있구요. 그 옆으로 이어진 행랑채 끝에 있는 조그만 문으로 나가면 봉수당 앞마당으로 가게 됩니다. 아래 사진에서 유여택의 왼쪽 긑자락에 보일듯 말듯한 문이 향춘문(向春門)으로 그리로 가게 되면 복내당과 장락당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이 유여택 앞에는 해시계인 앙부일구가 있고, 또 화성행궁이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가기 위해 들리는 행궁이라 그런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과 연관된 뒤주들이 또 전시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뒤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요즘은 열려 있긴 한데 들어가 보시는 분을 못 봐서 잘 모르겠네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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