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능문화유적본부와 여행이야기가 함께 해서 진행하는 '왕릉천행'을 몇 번 다니고 왔다 보니,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들이 궁금해져서, 모임이 있어서 근처(?)에 갈 일이 있다 보니, 이 곳 고양의 서오릉에 들렀습니다. 서울 은평/홍제 쪽에서 고양 원당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5개의 왕릉이라고 해서 오릉, 그리고 예전 한양에서 보면 서쪽이라서 서오릉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왕릉을 정할 때의 당시 규정이 한양에서 어느 정도 거리에서 벗어나야 하면서도 다음 왕(보통 아들)이 자주 찾아갈 수 있는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기도 해야 하면서 풍수지리적으로도 좋은 자리여야 하다 보니, 그런 곳이 많지 않아, 이렇게 왕릉들이 모여 있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한데요.
무료로 운영되고 또 규모가 크지 않아서, 대기라인에서 2~30분 기다린 끝에 주차장에 들어와서는 겨우 주차하고 보니 3시가 좀 넘었더군요. 아래로 보이는 정문을 통해 입장해서는 서쪽으로만 쭉 가면 되서 이동 경로는 아래처럼 그냥 주욱 직진이라서, 그리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다가 처음 만난 곳은 우리에게 '장희빈' 드라마로 친숙한 19대 숙종의 묘인 명릉(明陵)이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흔하지 않은 장자로 후계를 잇는 게 2번이나 연속으로 이루어진(효종-현종-숙종) 거의 유일무이한 케이스였기에 정통성 등에서 누구보다도 확고했던 자리를 지켜왔다 보니, 솔직히 지 맘대로 왕비와 조정을 갈아치우는 엄청난 왕권(이라 말하고 지 맘대라고 말하고 싶은)을 휘둘렀던 숙종인데, 왕릉에서도 그게 보이더군요.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으로 향해 가는데, 저 멀리 능이 있는 언덕이 2개....? 가 보이는데, 왼쪽에는 능이 1기인 단릉이, 오른쪽에는 2개의 능, 즉 쌍릉이 보이더군요. 뭐지...? 하고 보니 오른쪽이 명릉, 즉 숙종의 능인데, 그 옆에는 우리가 '장희빈' 드라마로 잘 아는 인현왕후, 즉 두번째 왕비의 능이 있었고..... 왼쪽 언덕에 홀로 있는 능은 인현왕후가 승하하시고 난 뒤에 숙종의 3번째 부인이 된 인원왕후의 능이라더군요. 어째 인원왕후는 저렇게 다른 사람이 남편의 옆에 있는 걸 쳐다봐야만 하는 자리에 있고, 숙종은 얼마나 대단했기에, 자기 부인들이 모두 자기 근처에 묻히게 하게 했는지..... (나중에 보면 첫번째 왕비와 잠시 왕비였다가 쫓겨난 장희빈까지 이 서오릉에 다 있는 걸 알게 되니 기다리셔요. ^^)
숙종의 만행(?, ^^)을 보고 난 뒤 좀 더 이동하다 보니,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을 지나가게 되더군요. 그러고는 갈래길로 들어섰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직진하지 않고 약간 북쪽으로 돌아가면 사도세자의 생모이자 영조의 후궁이었던 영빈 이씨가 묻혀있다는 수경원(綏慶園)과 숙종의 첫번째 왕비였던 인경왕후의 능인 익릉(翼陵)이 있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첫번째 부인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 묻어두다니, 숙종 당신은 도대체....
이후 약속 시간 때문에 Detour하지 않고 그냥 직진하면서, 약간 오르막길을 오르니 순창원(順昌園)이 나왔습니다. 여기는 13대 명종의 아들이었던 순회세자와 그의 부인이었던 공회빈 윤씨이 함께 묻혀 있는 곳인데요. 명종의 아들로 12세에 요절하면서, 개인적으로 조선의 27명의 왕들 중 가장 비겁하고 비열하다고 생각하는 하성군, 선조가 명종의 뒤를 잇게 하게 되는 사태를 간접적으로 만들게 된 원인 제공자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순창원을 지나쳐서는 이전보다는 능 사이 거리가 좀 멀어서 좀 더 걸어가야 하더군요.
그렇게 좀 더 들어가니, 경릉(敬陵)이 나왔습니다. 여기는 수양대군의 아들인 의경세자의 묘인데, 아버지인 수양대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왕위는 동생에게 가서 이후 예종이 되는데, 이 예종이 승하했을 때, 아들인 제안대군이 나이가 너무 어려, 결국 제안대군의 사촌형인 자을산군이 그 뒤를 이어서 성종이 됩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자을산군, 즉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는 사후 왕으로 추존이 되어 '덕종'이 되고, 그의 아내는 바로 인수대비 한씨로 이후에 손자인 연산군에게 버럭 당하시는... 바로 그분인데요... 이 두 분의 묘가 바로 경릉입니다. 근데 신기하게도 정자각을 기준으로 두 분의 봉분이 각기 다른, 왼쪽과 오른쪽 언덕 위에 있는데.... 그 사이에 숲이 있어서 서로 보이지 않을 거 같더군요. 원래 사이가 안 좋으셨나....?
경릉을 지나고 나니, 길은 약간 서북쪽으로 돌면서, 조금씩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왼쪽에 묘가 하나 있는데, 정자각이고 뭐고 없어서 어느 후궁이나 군의 묘가 되겠기니 했더니, 장희빈의 묘인 '대빈묘(大嬪墓)'더군요. 숙종의 왕비가 된 적이 있는 4명이 모두 이 서오릉에 그것도 숙종과 함께 이 서오릉에 있는 것도 참 얄궂은 운명인지 싶더군요.
그렇게 대빈묘를 지나, 언덕 하나의 정상까지 오르고 다시 주욱 내리막을 타다 보면 오른편에 홍릉(弘陵)이 보이더군요. 여기에는 영조의 첫 부인인 정성왕후 서씨의 묘입니다. 혼인 첫날부터 영조에게 소박 맞았다는 얘기가 있는데다가, 영조가 왕위에 올라 왕비가 되었음에도,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게 온 나라가 알 정도였고, 정성왕후가 아프다고 하면 꾀병 부린다고 했다고 할 정도의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였으며, 정성왕후가 승하했음에도, 같은 날 사위가 죽었다고 아내의 빈소가 아닌 사위의 빈소에 가 있어서 온 신하가 반대했음에도 강행했던, 몹쓸 남편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살아 생전에 사이가 나빠서일까, 아님 그래도 미안해서일까, 홍릉에 함께 묻히길 원했다고 전해지는 영조이며, 실제로도 정자각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능에서 정자각으로 바라봤을 때로 하면 반대가 되어서 오른쪽이 빈 게 되어 우허제라고 하는 오른쪽 빈자리가 영조의 자리로 남겨져 있었으나, 실제로 영조는 사후에 계비였던 정순왕후와 함께 동구릉 내에 묻히게 된다. 뭐, 정조가 정순왕후 눈치를 봤다고 하는 얘기도 있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할머니를 괴롭힌 영조에 대한 소심한 복수이지도 않을까 싶네요.
홍릉을 지나서 계속 내리막을 내려가보니, 서오릉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창릉(昌陵)에 도착하게 되더군요. 여기는 8대인 예종과 부인인 안순왕후 한씨의 묘가 함께 있는 곳입니다. 정자각 기준으로 왼쪽에 보이는 봉분이 예종, 오른쪽이 안순왕후의 봉분입니다.
그렇게 익릉을 제외하고는 다 보고는 창릉 옆 산책길로 돌아서 익릉 옆으로 나오는 길로 가려고 움직이다가, 관람시간이 30분 밖에 안 남았다는 안내 방송에, 모르는 길로 가다가 시간이 더 걸릴까봐 다시 오던 길로 돌아서는 거의 뛰다시피해서 나오면서 서오릉 방문을 마쳤네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왕릉천행을 통해 다시 한 번 들러봤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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