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녔던 왕비였던 문정왕후를 태릉에서 만나고 나서 간 곳은, 조선왕조에서 가장 비운의 왕비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했던, 정순왕후 (사도세자 그 때의 그 사람이 아니라, 단종의 정비였던 그 분) 송씨가 안장되어 있는 사릉이었습니다.
원래는 사릉을 보고 난 이후에 짧은 공연을 보는 게 일정이었지만, 공연자 분의 다른 일정으로 인해서, 공연부터 보고 사릉을 보러 올라가는 것으로 일정이 바뀌어서, 공연부터 즐겼습니다.
정자각이나 신도 등이 구성되어 있지만, 능침영역에 올라가서 본 사릉은 난간석도 병풍석도 없는 봉분만이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순왕후께서 승하하셨을 때는, 아직 복권이 되기도 전으로, 신분 상으로는 노비였지만, 대군부인의 예로서 장례가 치뤄졌었고... 나라에서 장례를 치룬 것이 아니라, 왕후에게 시누이 남편, 단종에게는 매부가 되는 해주 정씨네 선산 근처에 장지를 정해 능역이 조성되다 보니, 다른 조선왕릉과 달리, 인접한 지역에 일반인들의 묘역이 보이고, 또 왕릉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도 근처 몇 리 내에 아무것도 없이 탁 트인 느낌이 아니라 뭔가 그냥 우리네 선산 올라가서 동네 내려다 보는 느낌이 드는 게.... 왠지 안타깝고도 또 안타깝고... 그리고 그 조카살인마에 대한 분노가 또 한 번 치솟아 오르더군요.
이후에 왕후로 추존되고 복권되면서 왕릉으로서의 재정비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 때는 이미 석상들이 사이즈가 작아지던 시점이라... 근데 왠지 그냥 일부러 작게 만들었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또 열폭하고.... 앞쪽의 해주 정씨 묘역은 원래 왕릉의 조성 규정에 따르면 이전되어야 하지만, 추존/복권 되기 전까지는 후사가 없는 정순왕후의 제사를 해주 정씨 가문에서 지켜 지내주었기에.. (눈물 주르르....)
조선왕조에서 최초로 보위에 올라있던 임금과 결혼했던(그전에는 잠저에서 이미 결혼했거나, 또는 세자빈으로서 왕후가 되었던) 왕후이지만, 이미 조카살인마가 이미 살생부로 살육을 벌여 정권을 찬탈하고는 권력을 전횡하던 시절에, 그나마 비난 좀 피해보려고 미혼의 조카 단종의 국혼을 추진하는 통에 그 험난하고 눈물... 아니 분노가 치밀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정순왕후로서의 삶이 시작되는데요.. 단종 재위 2년차에 왕비로 간택되었지만, 1년 뒤에 패륜아가 조카를 왕위에서 쫒아내서 노산군으로 강등시키면서 군부인이 되어 버리고.... 결국엔 영월로 귀양까지 가서 부군인 단종이 살해될 때, 노비로 신분이 강등되면서 지금의 청계천에서 동냥을 하면서 살기도 하다가, 나중엔 청계천 근처에서 염색 일을 하면서, 끝끝내 부군을 살해한 인면수의 가증스러운 도움을 거부하면서.... 결국엔 그 인면수의 아들들이 일찍 비명횡사하고, 증손자가 패악질로 나라를 망치다 쫓겨나고, 또 다른 증손자가 무능의 끝판을 보여주는 걸 다 보다가 조선왕조의 왕후 중 두번째로 오래 사는 굴곡진 삶을 사신 분인데... 알고 보니 본관이... 먼 친척 어르신인 걸 알게 되면서, 안 그래도 그 XX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많았는데, 몇 배로 더 쌓인..... 거기다가 야사처럼 들은 사릉의 나무들이 동쪽 영월을 향해 자란다는 얘기도 그렇고....
작년에 장릉 갔을 때의 안타까움과 분노 등이 올해 여기서 다시 또 느끼는 와중에 왕릉천행 행사는 일단 모두 끝났지만, 사릉 입구 쪽에 사릉 재실 말고 조선왕릉생태전시관 옆에 왕릉이나 궁궐 복원 때 사용되는 나무들의 묘목을 키우고 관리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잠깐 들러 보는 것을 추가로 해서 행사의 일정은 마쳤습니다.
내년에는 또 왕릉천행의 프로그램이 어떤 게 있을지 궁금하지만, 새로운 코스가 생기면 또 참석해보고 싶은 맘이네요.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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