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에서 이동해서는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계유정난과 단종 관련된 얘기에 관심이 많고 해서 이 곳을 늘 오고 싶어했는데, 동선이나 기회가 되질 않아서 못 와봤는데, 이 행사 덕에 오게 되었네요. 도로 변에 언덕 위에 있는 공원으로 살짝 오르막 타고 올라가듯이 올라가니 바로 보이더군요.
'숙종 능행길'과 사육신묘와의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숙종은 조선 역대 임금 중에서 정통성이 두번째로 확고한 임금이었습니다. 정통성이라고 해 봤자, 예전이다 보니 혈연관계인 것이고, 효종의 첫째 아들인 현종, 그 현종의 첫째 아들인 숙종이다 보니, 2대가 연속으로 첫째 아들로 이어진 경우이고, 태어나서부터 '원자'라고 하여 '세자'가 되기 전부터 후계로 지명되었던 게 숙종입니다. 근데, 이게 조선 역대 임금 중에, 2대가 연속으로 첫째 아들이 된 경우도 거의 없었던지라, 왕권의 정통성 측면에서 신하들에게 꿀릴 것이 없었던 것이죠. 재밌는 건 그 숙종보다도 정통성이 더 확고했던 존재는 바로 사육신들이 왕으로 복위시키려 했던 단종이었습니다. 세종의 첫째 아들인 문종의 첫째 아들인데다가, 세종이 살아 있을 때 '원손'이라고 하여 이미 차차대로 후계로 지목되었고, 원손>세손>세자의 위치에 있다가 왕이 되었으니, 정통성으로 보면 그 누구보다도 더 확고했었죠.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육신들이 수양대군에 의해 처형을 당했지만, 역적의 시신을 수습한다는 거 자체가 감히 나서기 힘든 일이다 보니, 누군가가 몰래 한강을 넘어 여기 노량진에다가 시신을 수습해서 가져와서는 묘를 짓고는, 당시 역적이다 보니 이름을 정확히 기술하여 묘비를 짓지 못하고 '누구 씨의 묘' 이런 식으로 세워 뒀던 거죠. 거기에 사육신 중 한 명인 유성원은 집에서 자결했고, 하위지의 경우에는 부인이 수습하여 고향 선산(현재 구미시로 통합됨)에 묻혔던지라, 처음부터 6명의 묘가 있었던 건 아니고, 또 조선왕조실록 내 기록과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의 기록이 다르고 해서, 실제로는 현재 7분의 묘가 모셔진 상태입니다.
원래 4개의 묘가 '성씨 묘', '유씨 묘', '박씨 묘', '이씨 묘' 이렇게 있었고 (이것도 그렇게 적혀 있으니 추정입니다) 그 뒤에 가묘로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묘가 추가되어 모셔져 있습니다.
이들을 복원한다는 것은, 이들을 처형하고, 이들이 왕위에서 내리려 했던 세조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 세조의 후손인 이후 임금들이 이를 다루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세조가 단종을 처음부터 죽이려 하지 않았고, 단종과 사육신을 포함한 단종을 위해 죽은 이들에 대해서 안타까워 했다(.....라는 야사/이야기)라고 하는 걸 근거로 해서, 자신의 왕권의 정통성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어서, 이 이런 일로 흔들리게 없다는 생각과 정치적 목적(이건 다음 글에 기술할께요.)으로 이들을 복원해주는 일을 진행했죠. 성리학 사상에서는 임금을 위해 충성했던 사육신은 '선'이지만,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은 '악'이었던 건라.... 사림들이 바라는 걸 해주더라도 자신의 왕권은 확고하고, 자기는 얼마든지 이걸 컨트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호라고 할까요..
그렇게 사육신묘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근처에 있는 사육신박물관을 잠깐 들러서 구경하고는 이 행사의 핵심 목적지인 고양서오릉으로 이동했습니다.
To Be Continued...
'Travel around > 대~한민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릉팔경]길례 - 조선왕실 능행길 Part #7 - 기념품 (0) | 2025.05.26 |
---|---|
[왕릉팔경]길례 - 조선왕실 능행길 Part #5 - 파주삼릉 영릉 (0) | 2025.05.25 |
[왕릉팔경]길례 - 조선왕실 능행길 Part #4 - 파주삼릉 순릉 (0) | 2025.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