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북 번역을 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랑 사전이랑 검색해서 알아본 내용입니다.
뭐 게임하는 데 이 사람이 누군지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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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nne d'Autriche(안 도트리슈)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앤 왕비가 바로 이 안 도트리슈이다. 스페인 왕 펠리페 3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사이의 맏딸로 루이 13세와 결혼했으나 루이 13세는 그를 평생 냉대했다. 영국의 버킹엄 공작의 구애로 인해 프랑스 궁정에 추문을 남겼다. 재상 리슐리외가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을 완전 차단하고 프랑스-스페인 전쟁 당시에는 스페인과의 친선 관계를 들켜 곤경에 처했다. 그러나 루이 14세와 오를레앙 공작을 낳아서 위신이 높아졌다.
루이 14세가 왕위에 오르고 그의 나이가 어려서 섭정이 된 후에는 루이 13세와 리슐리외가 강화시켜 놓은 왕권을 더욱 더 강화시키기 위해 정적이었던 리슐리외의 측근인 마자랭과 손잡고 '태양왕' 루이 14세의 기반을 다졌다.
2. Philippe I. de Orleans(오를레앙 공작)
루이 14세의 동생으로 처음에는 앙주 공작으로 불렸으나 삼촌의 작위를 이어 오를레앙 공작으로 불렸다. 루이 14세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조그만 틈도 주어지지 않아으나 궁정에서 겉으로는 존경받으나 속으로는 경멸받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관대히 대해주었다. 그러나, 용감한 군인으로 왕위계승전쟁과 네델란드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그를 시기했던 형 루이 14세에 의해 더 이상 지휘권을 가질 수 없었다. 양성애자였으며 그의 아들 필리페는 루이 15세의 섭정을 맡았다.
3. Marie-Therese D'Espagne(마리 테레즈)
루이 14세의 아내로 왕위계승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 중 하나이다. 원래 스페인왕 펠리페 4세와 프랑스 출신의 왕비 이사벨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프랑스-스페인 전쟁의 종결하면서 정략 결혼의 대상이 되었다. 엄청남 지참금을 가지고 프랑스에 가는 대신 스페인의 왕권을 포기하는 조건이었으나 필리페 4세의 뒤를 이은 카를로스 2세가 어린 나이에 죽고 유언으로 후계자를 그녀의 자손으로 할 것을 명하는 바람에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결혼 초기부터 루이 14세가 정부를 두는 관계로 소박 맞은 신세였으나 한번도 불평을 안 해, 그녀가 죽는 날 루이 14세가 '지금까지 그녀가 날 귀찮게 한 게 처음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4. le Grand Dauphin(도팽)
루이 14세의 큰아들이자 상속자였기에 Dauphin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참고로 프랑스 왕위 계승이 확실한 사람을 Dauphin이라고 부른다. 유능한 전략가이기도 했던 그는 프랑스-스페인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고(1711) 그의 아들인 부르군디 공작 부부 역시 그 다음 해 (1712) 일찍 죽고 천애고아가 된 부르군디 공작의 2살 난 아들-도팽의 손자, 루이 14세의 증손-이 1715년 루이 15세로 즉위 하게 된다.
5. Francoise-Athenais de Montespan(몽테스팡)
루이 14세의 정부 몽테스팡 후작과 결혼해 자녀 2명을 두었으며 왕비 마리 테레즈의 시종으로 임명되어 궁으로 들아가서 정부가 되었다. 루이 14세와 7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나중에 모두 적자로 인정 받았다.
독물 사건에 연루되고 왕의 마음이 맹트농에게 옮겨 간 후 궁정에 남아 있다가 수도원으로 가서 수도원장으로 여생을 보냈다.
6. le Grand Conde(꽁테)
프롱드의 난 시 마지막 봉기를 일으켰던 반란 지도자였으나 정치적 군사적 입장을 지킬 수 없게 되어 스페인으로 망명하여 스페인-프랑스 전쟁 시에 스페인 총사령관이 되었다. 양국의 평화 조약 후 본국으로 돌아온 후 왕의 호감을 사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스페인과의 전쟁이 재발발하고 이에 루이 14세는 그에게 공격 지휘권을 맡겨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 이후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아 여러 전투에서 지휘권을 가지고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말년 중병에 걸려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다.
7. Jean-Baptiste Colbert(콜베르)
루이 14세 시대의 국무 장관
해군장관 시절에는 직접 해전에 참가해서 용맹을 드높이고 프랑스 해군을 세계 최강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에 걸친 국무 장관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검소함만은 배우지 못해 지나치게 쾌락을 추구하고 특히나 미술품 수집에 열광했다.
8. Francoise de Maintenon(맹트농)
루이 14세의 2번째 부인으로 정식 왕비칭호는 받지 않았다. 몽테스팡 후작 부인의 루이 14세의 아기를 낳게 되자 유부녀와의 염문을 꺼려한 루이 14세 때문에 아기들을 숨겨 놓고 키울 사람이 필요했고 이 때 선택된 사람이 맹트농이었다. 이후 몽테스팡 부인이 정식 왕비로 인정받게 되자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왕궁에 들어가게 되었다. 왕의 호의로 맹트농 성을 사들이고 맹트농 후작이 되었으며 왕비가 죽은 후 실질적인 왕비 역할을 하게 되었다.
프랑스 왕권의 몰락 기점이 루이 14세 말기이기 때문에 그녀는 루이 14세의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아직까지 탐욕스럽고 사악한 고집쟁이로 알려지고 있으나 실제 와는 다르다고 최근 알려지고 있다.
9. Louis de La Valliere(라 발리에르)
오를레앙 공작의 부인의 시녀로 뽑혔으나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가 결혼한지 1년만에 루이 14세는 라 발리에르를 자신의 정부로 삼았다. 그러나, 모후 안 도트리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또 라 발리에르, 그녀 자체가 소심하여서 후궁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모후 안 도트리슈가 죽고 난 후에는 몽테스팡 후작 부인에게 사랑을 빼앗긴 상태가 되었고 몽테스팡 후작이 루이 14세와 몽테스팡 후작 부인간의 간통을 세간에 알리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궁으로 끌려들어와 한 남자를 놓고
두 여자가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죽을 때 까지 36년간 수녀로서 지냈다.
10. Henri de Turenne(튀렌)
루이 14세 시대의 가장 위대한 군사령관 중 하나로 30년 전쟁때 군인 생황을 시작하여 프롱드의 난 초기에는 반란군에 참여했다가 형이 루이 14세의 섭정인 안 모후와 화해하게 되자 후기에는 왕의 편에서 활약을 하였다. 프랑스-스페인 전쟁에서의 그의 큰 활약으로 프랑스는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 조약을 맺었다.
11. Jules Mazarin(마자랭)
리슐리외의 사망후 재상에 오른 추기경으로 리슐리외와 정적 관계이던 안이 그를 믿고 재상 자리를 맡기자 리슐리외가 추진하던 왕권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12. Francois-Michel Louvois(루부아)
루이 14세 때의 육군장관으로 프랑스의 군대 개편에 이바지했다.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 르 틀리에에게 반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바람에 군대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점차 군대 교육에 적응하고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나서는 프랑스-스페인 전쟁에서 공을 세우게 되며 정치,군사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육군 장관인 아버리 르 틀리에를 도와 실질적으로 육군 장관 역할을 하면서 프랑스 군대 개편에 이바지했는데 실상은 아버지가 모든 기반을 닦은 상태에서 그는 이를 뒷받침한 행정가라고 봐야한다.
말년에 루이 14세와의 충돌이 있긴 했지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장관 중 한 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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