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을 오전에 보고 나서는 청운동 쪽으로 나가서는 점심을 먹고는 청와대 서쪽에 있는 무궁화동산으로 갔습니다. 여기로 간 이유는 경복궁 북서쪽이자 청와대 바로 옆인 서쪽에 있는 칠궁이라는 곳에 가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궁"이라고 해서 경복궁, 창덕궁 같은 걸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여기는 정확히는 "사당"입니다. "사"로 끝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왕족의 사당이라 "궁"이라고 부르나 싶기도 한데, 찾아 본 건 아니고, 주인장의 그냥 추측입니다.
무궁화동산에 가면 조그만 "칠궁안내소"라고 이름이 붙어 있는, 안내부스가 있는데 여기에 가면 시간제로 현장에서(제가 방문했을 땐 그랬습니다.) 매 시각 정시마다 입장하는 걸 예약해야 합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으나,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신분증을 확인하고 연락처를 기록해야 하더군요. (지금은 거주자가 없지만, 한 때는 대한민국의 정상이 살던 집 옆이었으니 보안 문제로....) 그러고 나면 입장객을 구분하기 위한 안내 목걸이를 주더군요.
잠시 후 시간이 되니, 안내 해 주시는 가이드 분께서 오셔서는 관람객을 이끌고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차로를 건너 건너편의 칠궁으로 입장시켜 주더군요. 들어가면 먼저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건물이 보입니다. 정말 가로로 길어서 반대편 담장 구석까지 가서 찍어도 일반 카메라로는 건물 전체를 찍는데 힘들어서 결국 붕어렌즈를....
이 재실 앞에서 간략하게 칠궁에 대한 안내를 받았습니다. 원래는 경복궁의 후원 구역이었지만, 이후 경복궁의 권역이 줄어들면서 경복궁 바깥에 존재하게 되었고, 원래는 영조가 자신의 친모인 19대 임금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사당을 옮겨 와서 육상궁(毓祥宮)이라는 곳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후 고종 때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이후에 실제 왕으로 즉위했거나 사후 추존된 왕의 친어머니에 해당하는 후궁들의 사당을 이 곳에 모으게 되면서, 이후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어머니인 순빈 엄씨의 사당까지 모이게 되면서 총 7분의 임금의 친모인 후궁이 모이게 되어, 별칭인 "칠궁"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재실 오른쪽으로 난 길(청와대 영빈관과 붙어 있어서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육상궁(毓祥宮)에 도착합니다.
분명히 육상궁(毓祥宮)과 연호궁(延祜宮)을 보러 올라간다고 했는데, 건물이 하나더군요. 그리고 현판도 여섯 육자가 안 보여서 육상궁은 어디 있지 했더니, 가이드 분께서 알려주시기를, 이 3칸짜리 사당에 왼쪽은 원래 주인인 21대 영조의 친어머니인 숙빈 최씨의 사당이 있고, 오른쪽은 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왕이 되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 말고) 진종의 어머니인 정빈 이씨의 사당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은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毓祥宮)이기도 하고, 정빈 이씨의 사당인 연호궁(延祜宮)도 되는....
그래서, 두 사람 중 손윗사람이 되는 육상궁의 현판이 안쪽에 위치하고, 손아래사람인 연호궁의 현판이 바깥에 보여서, 그냥 얼핏 보기에는 연호궁의 현판만 보이더군요. 두 현판의 사진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세요.
계단으로 올라간 정문(?)을 끼고 왼쪽(서쪽)으로 돌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반대편의 나머지 5개 사당으로 가는 길로 이어지는 가운데에 냉천(冷泉)이라는 우물과 냉천정(冷泉亭)이라는 3칸짜리 전각이 존재합니다. 봄이 되어서 꽃도 피고, 양쪽에 있는 사당으로 가는 길에 잠시 쉬며 정원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 개인적으로 꽤 맘에 들었습니다.
냉천정에서 잠시 봄 기운을 맛보고는 조금 더 서쪽으로 이동해서는 나머지 5개의 사당을 만나러 갔습니다.
5개 사당 권역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가장 나중에 합사된 덕안궁(德安宮)입니다. 27대 순종 임금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어머니인 순빈 엄씨의 사당으로 1929년에 이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덕안궁의 왼쪽으로 돌아가면, 3개의 전각이 나란히 있습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전각은 저경궁(儲慶宮)으로 14대 임금인 선조의 후궁이자, 16대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으로 이후 추존된 원종의 친어머니인 인빈 김씨의 사당입니다.
가운데 있는 전각은 대빈궁(大嬪宮)으로, 나름 여성으로써는 아주 유명한 인물의 사당입니다. 바로 19대 숙종의 비이자 후궁이었고, 20대 경종의 친어머니인 희빈 장씨. 그렇습니다. 바로 장희빈으로 여러 번 드라마로 제작된 그 희빈 장씨입니다. 어찌 보면 정치적 라이벌이자, 연적인 희빈 장씨의 사당과 숙빈 최씨의 사당이 한 곳에 있다는 곳도 참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을 거 같네요.
그러고는 가장 숨겨져 있는, 오른쪽에 있는 남은 한 건물...엥 5개의 사당이라고 해놓고는 왜 4개밖에 없지 했더니, 이 4번째인 오른쪽 안 건물도 2분을 함께 모신 합사이더군요. 먼저 21대 영조의 후궁이자, 22대 정조의 친할머니, 즉 사도세자의 친어머니가 되는 영빈 이씨를 모시는 선희궁(宣禧宮)과, 22대 정조의 후궁이자 23대 순조의 친어머니가 되는 수빈 박씨를 모시는 경우궁(景祐宮)이 하나의 전각으로 되어 있고, 앞서 육상궁과 연호궁의 경우처럼 손위사람인 선희궁 현판이 안쪽에 손아래사람인 경우궁 현판이 바깥쪽에 있어서,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경우궁 현판만 보인답니다.
이렇게 약 30~40분 정도의 가이드 분의 안내를 받은 칠궁, 공식 명칭은 서울 육상궁의 관람을 마치고, 잠깐 자유 시간을 가지면서 사진을 몇 장 더 찍고는 평일 오후의 고궁 투어를 마무리 했습니다. (정확히는 일전의 석조전 특별관람을 다시 한 번 더 했지만, 그건 나중에.. 또는 이전 석조전 글에 합쳐서 올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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