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실을 나와서 종묘 정전으로 가려고 하는데, 재실과 정전 사이의 돌길에 청설모도 보이고, 봄꽃도 피고... 솔직히 남의 집 사당에 왔는데, 혼자 꽃놀이 하며 즐기는 게 조금 미안한 맘도 들어서, 일단은 남신문을 지나 정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방문 당시에는 종묘 정전의 일부가 공사/보수 중이라서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남신문을 들어가자마자, 일단 돌로 꾸며진 한 단 높은 광장이 정말 드넓게 있고, 그 너머에 정전 건물의 받침이 되는, 또 한 단 높은 돌 제단이 있고, 그리고 정전이 가로로 기다랗게 웅장하고 근엄한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이렇게 한 단 한 단 높아지면서, 산 사람의 영역에서, 저 세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그런 느낌도 들고, 또 높이에서나 거리감에서 느껴지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거리감도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단 한쪽 모서리에서 정전을 바라보는데.... 그 웅장하고 근엄한 아름다움은..... 언젠가 눈이 소복하게 내려 쌓인 날에 가장 먼저 들어와 눈 덮인 정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전에 푹 빠진 상태에서 발걸음을 옮겨 좀 더 북서쪽으로, 안쪽으로 이동했는데, 가는 길에 정전 악공청을 지나 영녕전에 도착했습니다.
영녕전 안으로 들어가보니, 일단 기본적인 구성은 정전과 비슷하더군요. 한 단 높은 석조광장과, 거기서 한 단 또 높은 제단 그리고 그 위에 전각이 있는데... 일직선으로, 즉 하나의 건물로 보이는 정전과 달리, 지붕 높이가 다른 3구역으로 나눠지는 영녕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가운데는 태조의 아버지부터 5대조까지를 모신 곳이고, 양 옆이 정전에 모셔지지 못한 임금들과 추존왕이지 않나 싶습니다.
잘 몰랐을 때는, 태조의 5대조나 추존왕은 영녕전으로 모셔지지만 즉위를 했던 임금들 25명(연산과 광해는 제외)는 순서대로 정전에 모셔진 후 자리가 없어서 영녕전으로 모시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게 아니라, 새 임금들이 직전에 승하하신 왕을 어디 모실지 정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사적인 감정이 들어갔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문종이 영녕전에 있을 이유가 없는데, (개인적인 호불호이자 의견입니다) 빌어먹을 동생인 세조를 돋보이게 하려고, 세조 후손들이 장난질을 한 게 아닌가 싶더군요. 그렇게 따지고 보면 조선에서 가장 무능한 임금들이 감히 세종대왕과 함께 정전에 모셔져 있고, 문종이나 인종 같은 인품이 뛰어난 군자였던 분들이 영녕전에 있는 게..... 괜시리 열 받아 하면서, 영녕전에 모셔진 분들을 떠올리면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영녕전까지 보고 나면 전각은 다 본 거라, 들어온 길로 다시 돌아가면 되는데, 일제에 의해, 그리고 현재는 율곡로로 끊겨 있는 동궁쪽으로 난 북쪽 담벼락을 보면서 걷고 싶어서 약간은 언덕을 올라가서는 정전과 영녕전 뒤편 길로 돌면서 봄꽃나무의 풍경을 즐기면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 돌고 내려와보니, 입구 뒤쪽에 고려의 공민왕을 모신 공민왕신당이 조그맣게 있더군요. 종묘를 태조가 지으라고 명할 때 공민왕신당도 같이 지으라고 했다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리했는지는 좀 궁금하네요.
공민왕신당까지 보고 입구 앞의 호수에서 꽃을 배경으로 셀카다리들을 세워두고는 봄날 종묘 방문의 증거사진(^^)들을 남기고 나니 10시가 훌쩍 넘어서 이른 아점을 먹으러 장소를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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